자활일기

2024. 3. 11 (월) : 탈수급을 향해 뛰쳐 나가게 하는 강력한 동기로 작용하는 것에 숨겨진 의의가 있기라도 한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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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센터장 댓글 0건 조회 168회 작성일24-03-12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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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명수(희망제작소)]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된다는 건 사회적 배려와 복지혜택의 대상이 되어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생겼다는 점에서 매우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이면서도 한편으론 내 불행과 현실의 곤란함을 증명하여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는 뜻이기도 해서 심리적인 저조함과 위축이 함께 온다.

  이렇게 감정 한켠이 다운된 상태로 사연은 달라도 비슷한 처지의 동료를 만난  게이트웨이와 디딤돌 과정을 거치면서 개인적으로 새삼 느꼈던 것들 중 하나는 일상의 규칙성이 만드는 평범함과 거기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견고함이었다 

  매일 아침 몸을 씻고 양치를 하고 깨끗한 옷을 찾아 입는 등의  최소한의 준비와 단장을 하고 센터로 나서는 동안 만나는 마을 주민이나 단골가게 사장님 등 서너 명 쯤과 인사를 나누고 센터에서 만나는 분들과도 다소 과장되게 안부를 묻는 등의, 사소하고 하찮아서 평범하기 짝이 없는 하루의 시작을 연습했던 과정들이 5개월 간의 의미와 성취였지 싶다. 부끄럽지만 이 조차도 마음이 꺾였다는 핑계로  버겁다 느끼거나 포기했던 순간도 있었다.

  원했던 희망제작소에 속하게 된 것도 센터의 배려와 결정에, 세심한 실무자 선생님들 덕분에 여전히 다행스럽고 운이 좋았다고 여긴다. 최근 넓고 멋진 공간으로 이사한 제 2 희망제작소로 출근하고 있다. 만족스럽고 애정이 가는 곳이면서도 이 번듯함과 깔끔함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구석구석 청소하는 수고를 나눈다 

  무거운 양말목 봉다리들과 몸에 붙는 실밥부스러기들, 어마어마한 먼지가 잔뜩인 곳이다. 양말공장에서 기부해준 양말목 뭉치를  제품제작이 가능한 것들만 선별하고 먼지와 실밥을 털어 색깔별로 모으는 걸 기초작업이라 부르는데 일주일에 두 번인 이 공정이 있는 날엔 다들 머리 위에 하얀 섬유먼지가 앉는다. 

  가만 보면 선생님들은 눈이 건조하고 기침이 잦다. 같은 자세로 장시간 이어지는 작업에 목과 어깨의 부담을 호소하기도 하고 출퇴근 과정의 지문인식에 어려움을 겪을 정도로 다들 손가락이 건조해서 손톱 주위의 살들은 굳고 갈라진다. 꺼내놓은 핸드폰 화면이 하얗다

  제품 하나하나를 스스로 만족할 만큼 사전에 면밀히 구상하고 의견을 나눌 여유까지는 없는게 사실이라 전부터 해오던걸 한다는 느낌이들고 기계적인 손놀림만 계속하다보면  뭔가 길을 잃는 것 같기도하다.

  자활노동의 가치와 의미를 전혀 못 들어본 건 아니지만 실제 근무의 양상은 낭만적일 수 없다. 늘어난 납품처와 판매용 재고, 플리마켓 등의 이벤트를 준비하려면 다들 바삐 손을 움직여야한다. 이외에도 센터 차원의 다양하고 근사한 계획들이  기다리는듯 하지만 걱정이 많다. 타사업단 강의도 준비해야하고 반짝 판매 매대 설치도 그렇다.

  월말이나 연말결산 때 의미 있는 숫자와 성취로야 남겠지만 구성원 각자의 의사가 끼어들 자리는 처음부터 없었고 앞으로도 보이지 않아 달갑지 않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이건 내가 적극적이지 못하고 참여의지와 근로의욕이 부족한 나태한 수급자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희망제작소의 목적이 노동과 근로의 중간 쯤 어디에 있는지 솔직히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다 그렇듯 쉬운건 없다. 정했다니 따르지 않을 도리가 있나.

  시급 6천 몇 백원 남짓이라는 숫자는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왜 그랬는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각자의 사정에 맞춘 반일근무는 사라졌다. 개인 신병 치료나 육아, 간병 등을 일정 부분 포기하는 부담을 안으면서 노동법에서 요구하는 법정근로시간인 주 40시간의 전일근무로 나는 내 의무를 다 하고 있지만 노동자로서의 권리는 갖지 못하고 그저 복지의 수혜자로 만족해야 하는 게 현재 내 사회적 신분임을 알기 때문이다. 

  최저시급도 점심값도 퇴직금도 감히 떠올리지 말아야한다. 노동을 하되 노동자가 아닌데 어디에서 자존을 회복하고 노동의 가치를 발견해야 할지 '지시 불이행'과 '불성실한 참여'라는 평가를 감수할 객기는 차마 없으니 정해준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체념의 정서가 자연스러워지는 중이다. 혹시 자활노동의 목적 중에는 불합리한 지시와 처우에 반발하여 탈수급을 향해 뛰쳐나가버리는 강력한 동기로 작용하는 것에 숨겨진 의의가 있기라도 한걸까. 나는 왜 이런 오해를 자꾸 하고 있나. 더 늘어놓으면 뻔뻔하고 불순해 보이려나. 우리는 그래도 다들 수긍하며 묵묵히 일하고 이 울타리 안의 일상을 소중히 여기며 지내는 중이다. 이곳에서조차 밀려나지 않았으면하고 그래서 함부로 밀쳐내지 않으려한다.

  좀 어두운 말들을 꺼내고 말았지만 매트와 방석을 손으로 직조하면서 누군가 내가 만든 상품을 골라가면 잠시 우쭐해질 만큼 짜릿하다. 무늬나 패턴에 아이디어가 생기면 바로 실행하여 결과물을 만드는 공정 자체가 신선한 재미를 준다. 예술적 감흥까진 아니라도 이 작업과정의 매력이자 장점이다. 사람을 보면 그이가 입은 옷의 패턴이 눈에 드는 지경이다. 늘 성공적인 완성품은 아니어도 반복과 숙달로 조금씩 평균이 올라가고 있다는 기분이 들 때 좋다 

  그래서 지금 난 미래에 대한 또렷한 계획과 자활을 이루려는 희망이 넘쳐 매일이 보람차고

조만간 탈수급에 이를거냐 묻는다면 마냥 긍정적인 모범답안으로 선뜻 말하기엔 조심스럽다. 그저 하루하루 일과를 수행하느라 급급한 건 아닌가 싶기도하다. 사실 더이상 위태롭지 않은 것으로도 충분히 고마워할 상황이겠지만 이제 만으로도 쉰 살이 된 난감함에 때로는 근심으로 마음이 헝클어지고 피로에 지치는 순간도 있다. 그래도 일상의 규칙성은 여전히 작동하고 익숙함을 통해 조금씩 더 단단해질거란 막연한 확신은 있어 다행이다.

  좋은 곳에서 고마운 인연들과 열심을 내고 보람도 얻고 머문 곳에서 나름의 역할을 기꺼이 찾는 괜찮은 태도를 갖추게 되길 바라본다 (이러다 이담에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어지면 어쩌나ㅎ) 현재로서는 여기까지가 내 마음가짐의 전부라 적어놓고 보니 앙상하고 뾰족하여 매우 민망하지만 그래도 일기의 미덕은 솔직함 아니겠나.

  기능적으로 더욱 능숙해져야겠지만 그간 생초보가 나름의 구실은 하도록 몇 번이고 가르쳐주고 지켜봐주고 기다려주고 참아주었던 친절한 동료, 선배 선생님들 모두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덕분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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